바나나, 토마토, 자세, 파워포즈와 면역력 — 어디까지가 검증된 이야기인가
"면역력에 좋다"는 문장은 한국어에서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무엇이 얼마나 좋아지는지, 누구에게, 어떤 조건에서인지가 다 빠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글은 반대로 간다. 바나나·토마토·자세·파워포즈 네 가지를 놓고, 규제기관이 실제로 승인한 문장과 사람 대상 시험에서 실제로 측정된 것과 측정되지 않았거나 재현에 실패한 것을 갈라서 적는다.
결론부터 말하면 넷 중 셋은 근거의 성격이 서로 다르고, 하나는 면역까지 이어지는 다리가 끊겨 있다.
0. 기준선: 승인된 문장은 생각보다 좁다
EU는 식품에 붙일 수 있는 건강 표현을 목록으로 못박아 두었다. Commission Regulation (EU) No 432/2012에 따르면 "면역계의 정상적인 기능에 기여한다(contributes to the normal function of the immune system)"는 문구는 구리·엽산·철·셀레늄·아연, 그리고 비타민 A·C·D·B6·B12에 대해서만 허용된다. 그것도 조건이 붙는다 — 그 식품이 해당 영양소의 "source of" 기준을 충족할 때만이다.
여기서 두 가지를 놓치기 쉽다.
첫째, 이 문구는 "면역을 강화한다"가 아니다. "정상적인 기능에 기여한다"는 것은, 그 영양소가 결핍되면 면역 기능이 망가진다는 뜻이지 더 넣으면 더 좋아진다는 뜻이 아니다. EFSA는 이 계열 표현의 근거를 영양소의 필수성(essentiality)에 두고 승인했고, 해당 지침에서 패널이 "1차 연구들을 검토하지 않았으며 근거를 저울질하지 않았다(did not review the primary scientific studies… and it did not weigh the evidence)"고 명시적으로 적어 두었다. 비타민 B6 관련 의견은 EFSA Journal 2009;7(9):1225이다.
둘째, "source of" 기준은 산수로 확인할 수 있다. Regulation (EU) No 1169/2011 Annex XIII이 정한 영양소 기준치(NRV)는 비타민 C 80 mg, 비타민 B6 1.4 mg이고, 고체 식품은 100 g당 NRV의 15% 이상이어야 "source of"를 붙일 수 있다.
1. 바나나 — B6는 통과하고, 시험은 다른 것을 보여준다
미국 농무부 FoodData Central 실측치(생바나나, 100 g 기준, FDC 173944)는 이렇다.
| 항목 | 100 g당 | NRV 대비 |
|---|---|---|
| 에너지 | 89 kcal | — |
| 비타민 B6 | 0.367 mg | 약 26% |
| 비타민 C | 8.7 mg | 약 11% |
| 칼륨 | 358 mg | 약 18% |
| 엽산 | 20 µg | 10% |
| 라이코펜 | 0 | — |
B6가 26%로 15% 선을 넘는다. 즉 바나나는 EU 규정상 "비타민 B6의 급원"에 해당하고, 따라서 "면역계의 정상적인 기능에 기여한다"는 문구를 붙일 수 있는 식품이 맞다. 이건 마케팅 문구가 아니라 규정 텍스트에서 도출되는 사실이다. 다만 그 문구가 뜻하는 바는 위에서 적은 대로 좁다. 비타민 C는 11%로 기준 미달이다.
그럼 바나나를 실제로 먹여 본 시험은 뭘 봤나. David Nieman 팀이 사이클 선수들에게 75 km 주행 중 바나나를 먹인 2012년 시험(PLoS ONE 7(5):e37479, N=14)에서, 바나나 조건은 6% 탄수화물 음료 조건과 비교해 염증·선천면역 지표에서 유의한 차이를 만들지 못했다. 운동 수행도 비슷했다. 즉 "설탕물보다 낫다"는 결과가 아니었다.
같은 팀의 2018년 시험(PLoS ONE 13(3):e0194843, N=20)에서 하나가 나왔다. 운동 21시간 뒤 채혈한 혈액을 자극했을 때 COX-2 mRNA 발현이 바나나 두 조건 모두에서 낮았고 설탕 조건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흥미로운 신호지만, 이건 ex vivo 단핵구에서 측정한 유전자 발현이다. 감기에 덜 걸린다거나 감염이 줄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2. 토마토 — 가열하면 라이코펜이 오르고 비타민 C는 기준선 아래로 내려간다
토마토에서 가장 재밌는 건 조리가 두 영양소를 반대 방향으로 민다는 점이다. USDA 실측치(100 g당):
| 형태 | 라이코펜 | 비타민 C | 비타민 C의 NRV 대비 |
|---|---|---|---|
| 생토마토 (FDC 170457) | 2,570 µg | 13.7 mg | 약 17% — 기준 통과 |
| 분쇄 캔 (FDC 170501) | 5,110 µg | 9.2 mg | 약 12% — 미달 |
| 토마토 소스 캔 (FDC 170054) | 13,900 µg | 7.0 mg | 약 9% — 미달 |
라이코펜은 소스로 가면 5배 넘게 오르는데, 비타민 C는 15% 선 아래로 떨어진다. 그러니까 "면역계의 정상적인 기능에 기여한다"는 승인 문구를 붙일 자격은 생토마토에 있고 토마토 소스에는 없다. 그런데 라이코펜 관점에서는 정반대로 소스가 유리하다. Gärtner·Stahl·Sies의 1997년 인체 시험(Am J Clin Nutr 66(1):116–122)은 같은 양(23 mg)의 라이코펜을 생토마토와 토마토 페이스트로 먹였을 때 페이스트 쪽 혈중 최고 농도가 2.5배, AUC가 3.8배 높았다고 보고했다. 함량도 높고 흡수도 잘 된다는 뜻이다.
다만 라이코펜에는 EU가 승인한 면역 관련 문구가 없다. 여기부터는 연구 단계다.
Riso 팀의 2006년 교차설계 시험(J Agric Food Chem, N=26, 26일)에서 라이코펜 5.7 mg을 담은 토마토 음료를 매일 먹은 참가자들은 LPS로 자극한 전혈의 TNF-α 생성이 34.4% 감소했다. 저자들 본인이 이 효과를 "modest"라고 표현했고, 다른 염증 지표들은 대부분 변하지 않았다. 같은 그룹의 2005년 시험(Br J Nutr 93(1):93–99)에서는 림프구 DNA 손상이 유의하게 줄었다(P<0.0001).
정리하면 토마토 쪽 증거는 "실험실 지표가 움직였다" 수준이다. 이것이 감염 빈도나 질병 결과로 이어진다는 데이터는 이 시험들에 없다.
3. 자세 — 실제로 측정된 것
여기서부터 이야기가 갈린다. 자세와 파워포즈는 같은 것이 아니다.
Nair 팀의 2015년 무작위배정 시험(Health Psychology 34(6):632–641, N=74)은 참가자 등을 물리치료 테이프로 고정해 구부정한 자세와 바른 자세를 유지시킨 뒤 Trier Social Stress Test를 시켰다. 결과: 바른 자세 집단이 자존감이 높고 기분이 좋고 두려움이 적다고 보고했으며, 말을 더 많이 하고 자기 자신을 덜 언급했다. 생리 지표에서는 스트레스 과제 중 맥압(pulse pressure)이 더 높았고 심박수는 차이가 없었다.
이건 잘 설계된 연구다. 그리고 면역 지표는 하나도 측정하지 않았다. 자세가 기분에 영향을 준다는 것과 자세가 면역에 영향을 준다는 것 사이에는 아직 아무 다리도 놓이지 않았다.
4. 파워포즈 — 다리가 끊긴 자리
파워포즈는 이 글에서 유일하게 주장이 명시적으로 무너진 사례다.
원 논문(Carney, Cuddy & Yap 2010, Psychological Science 21:1363–1368, N=42)의 주장은 2분간 확장적 자세를 취하면 테스토스테론이 오르고 코르티솔이 내려가며 위험 감수가 늘고 힘이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면역 이야기가 여기 붙는 이유는 오직 코르티솔 때문이다 — 코르티솔이 내려가면 면역 억제가 풀린다는 연결고리다.
그 연결고리가 끊겼다.
Ranehill 팀의 2015년 대규모 맹검 재현 시험(Psychological Science 26(5):653–656, N=200)에서:
- "힘이 느껴진다"는 주관적 보고는 재현되었다 — 평균차 0.245, 95% CI [0.044, 0.446], p=.017, d=0.344
- 테스토스테론은 재현되지 않았다 — p=.162
- 코르티솔은 재현되지 않았다 — p=.272
- 행동 효과(위험 감수)도 재현되지 않았다
2016년에는 원 논문의 제1저자 Dana Carney 본인이 "My position on 'Power Poses'"라는 공개 문서를 내고 "나는 '파워포즈' 효과가 실재한다고 믿지 않는다(I do not believe that 'power pose' effects are real)"고 적었다. Simmons와 Simonsohn의 2017년 p-curve 분석(Psychological Science 28(5):687–693)은 당시 문헌 전체가 사실상 0에 가까운 효과와 양립한다고 보고했다.
반론도 있다. Cuddy·Schultz·Fosse의 2018년 p-curve 재분석(Psychological Science 29(4):656–666)은 55개 연구를 대상으로, "힘이 느껴진다"는 감정 효과에 대해서는 증거가치가 강하다(p-half = .0009)고 보고했다. 즉 논쟁의 결과는 무승부가 아니라 축소다 — 살아남은 것은 주관적 느낌이고, 호르몬과 행동은 살아남지 못했다.
그리고 하필 살아남지 못한 쪽이 면역으로 가는 유일한 통로였다.
5. 그렇다면 기분이 면역을 움직이는가
파워포즈 옹호론의 마지막 퇴로는 이것이다. "호르몬은 아니어도 기분이 좋아지면 면역에 좋지 않겠나."
이 질문에는 30년치 답이 있다. Segerstrom과 Miller의 2004년 메타분석(Psychological Bulletin 130(4):601–630)은 300편 넘는 연구를 종합해, 만성 스트레스가 세포성·체액성 면역을 모두 억제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런데 같은 분석에서 이런 결과도 나왔다 — 주관적으로 보고한 스트레스 수준은 면역 변화와 일관되게 연결되지 않았다. 면역을 움직인 것은 스트레스원의 객관적 성격(지속 기간, 통제 가능성)이었지 "얼마나 힘들다고 느꼈는가"가 아니었다.
2분간 자세를 바꿔서 얻는 것은 정확히 후자다. 그래서 2분 파워포즈 → 기분 개선 → 면역 개선이라는 사슬은 두 번째 화살표에서 한 번, 세 번째 화살표에서 또 한 번 끊긴다.
6. 정직한 기대치 — 비타민 C의 경우
영양소 쪽도 마찬가지로 눈금을 낮춰 잡을 필요가 있다. 면역 관련 영양소 중 가장 많이 연구된 비타민 C의 코크란 리뷰(Hemilä & Chalker 2013, CD000980.pub4)를 보면:
- 일반 인구에서 규칙적 보충은 감기 발생률을 낮추지 못했다 — 29개 비교, 11,306명, RR 0.97 (95% CI 0.94–1.00)
- 감기 지속 기간은 성인 8%(3–12%), 소아 14%(7–21%) 단축
- 예외: 마라토너·스키어·아북극 훈련 군인 등 극단적 신체 스트레스 상황에서는 위험이 절반으로 — 5개 시험, 598명, RR 0.48 (95% CI 0.35–0.64)
이것이 "면역 관련 영양소" 중 근거가 가장 두꺼운 사례의 실제 크기다. 코크란 저자들의 결론은 "일반 인구의 일상적 비타민 C 보충은 정당화되지 않는다"였다. 라이코펜이나 바나나 B6가 이보다 더 큰 효과를 낼 것이라 기대할 이유는 없다.
7. 그래서 남는 것
| 근거의 등급 | 실제로 확인된 것 | |
|---|---|---|
| 바나나 | 규제 승인 문구 + 소규모 시험 | B6 급원 기준 충족(26%). 시험에서는 설탕 음료 대비 면역 지표 차이 없음, COX-2 발현에서만 신호 |
| 생토마토 | 규제 승인 문구 + 소규모 시험 | 비타민 C 급원 기준 충족(17%). 라이코펜 시험에서 TNF-α·DNA 손상 지표 개선 |
| 토마토 소스 | 연구 단계 | 라이코펜 5배·흡수 3.8배(AUC). 단 비타민 C 급원 기준 미달, 라이코펜 승인 문구 없음 |
| 바른 자세 | 무작위 시험 1건 | 기분·자존감·맥압 변화. 면역 측정 없음 |
| 파워포즈 | 재현 실패 | "힘이 느껴진다"만 잔존. 코르티솔·테스토스테론 재현 실패 — 면역으로 가는 경로 자체가 없음 |
네 가지를 관통하는 한 문장이 있다면 이것이다. 승인된 문구는 결핍을 막는 이야기이고, 시험 결과는 대리지표의 이야기이며, 파워포즈는 대리지표조차 남지 않은 이야기다. "상관관계"를 묻는다면 앞의 둘은 약하게 있고, 셋째는 측정된 적이 없고, 넷째는 있다고 주장되었다가 철회되었다.
근거의 한계
- EU 승인 문구는 효능 증명이 아니다. EFSA는 이 계열 문구를 영양소 필수성 기반으로 승인했고, 1차 연구를 저울질하지 않았다고 스스로 명시했다. "규정상 붙일 수 있는 문구"와 "먹으면 면역이 좋아진다"는 다른 진술이다.
- 인용한 식품 시험은 전부 소규모다. N=14, 20, 26 수준이며 대부분 단일 그룹 교차설계다. 이 규모에서는 우연한 유의성이 흔하다.
- 측정된 것은 대리지표(surrogate marker)다. TNF-α 생성량, COX-2 mRNA, 림프구 DNA 손상은 임상 결과가 아니다. 이 지표들이 개선되면 실제로 덜 아프다는 인과 사슬은 확립되어 있지 않다.
- USDA 값은 대표 평균치다. 품종·숙도·재배 조건에 따라 실제 함량은 크게 달라진다. NRV 대비 백분율 계산은 이 평균치에 근거한 산수이며, 개별 식품에 대한 보증이 아니다.
- 자세와 면역을 직접 이은 시험을 찾지 못했다. "없다"가 아니라 "이 조사에서는 확인되지 않았다"로 읽어야 한다.
- 파워포즈 논쟁은 종결되지 않았다. Cuddy 팀은 감정 효과의 증거가치를 옹호하고 있다. 다만 호르몬 효과에 대해서는 원저자 본인의 철회를 포함해 반대 방향의 근거가 우세하다.
이 글은 의학적 조언이 아니다. 진단·치료·복약에 관한 결정은 의료 전문가와 상의해야 한다. 면역 기능에 문제가 있다고 의심되는 경우 식이나 자세가 아니라 진료가 먼저다.
References
- Commission Regulation (EU) No 432/2012 establishing a list of permitted health claims made on foods. EUR-Lex 32012R0432
- Regulation (EU) No 1169/2011, Annex XIII (Nutrient Reference Values). EUR-Lex 32011R1169
- Regulation (EC) No 1924/2006, Annex ("source of" conditions). EUR-Lex 32006R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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